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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언약궤 시리즈 2편 : 웃사는 왜 죽었는가— 하나님의 분노인가, 언약의 경고인가, 아니면 신학적 오해인가

by think12161 2026.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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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00년경, 다윗은 춤을 추었다.

언약궤가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었다. 수십 년 만의 귀환이었다. 다윗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었고, 온 이스라엘 족속은 즐거이 소리를 지르며 나팔을 불었다.

그런데 그 행렬 중에 한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

이름은 웃사(Uzzah). 그가 한 일은 소 한 마리가 비틀거리자 언약궤가 떨어질 것 같아 손으로 붙잡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그를 쳐 죽이셨다.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소들이 뛰므로 그가 거기서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사무엘하 6:6-7)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독자에게 가장 강렬한 당혹감을 주는 장면 중 하나다.

좋은 일을 하다가 죽었다. 그것도 즉사로.

왜인가?


1. 사건의 전체 맥락을 정밀하게 읽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그 앞뒤 맥락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언약궤는 오랫동안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다 (사무엘상 7:1-2). 약 20년이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후, 그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사무엘하 6장의 행렬:

  •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3만 명을 거느리고 나섰다
  • 새 수레를 만들어 언약궤를 실었다
  •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를 몰았다
  •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악기를 연주하며 행렬을 이끌었다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비틀거렸다. 웃사가 손을 뻗어 언약궤를 붙들었다. 그 자리에서 죽었다.

다윗은 두려워하고, 분하고, 슬펐다. 그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여오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간 두었다. 오벧에돔의 집은 그 석 달 동안 복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비로소 다시 언약궤를 데리러 간다.

이것이 전체 그림이다. 이제 논쟁으로 들어간다.


2. 첫 번째 논쟁: 하나님은 왜 웃사를 죽이셨는가


📌 논쟁 포인트 ①: 즉각적 죽음의 정당성

🔵 전통적 견해: 웃사의 죽음은 언약 위반의 결과다

전통 신학은 이 사건을 언약 규정의 위반으로 이해한다. 민수기 4장은 언약궤 운반에 대한 세부 규정을 명시한다:

"그들이 성소에 들어오지 말라 그들이 죽을까 하노라." (민수기 4:20)

언약궤는 레위인 중에서도 고핫 자손만이 운반할 수 있었다 (민수기 4:15). 그것도 어깨에 메어 운반해야 했다. 수레에 싣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방식이었다.

더 나아가, 고핫 자손이 언약궤를 운반할 때도 직접 만지는 것은 금지되었다. 제사장들이 먼저 청색 보자기와 여러 겹의 가죽으로 언약궤를 싼 후에야, 고핫 자손이 채에 꿰어 어깨에 멜 수 있었다.

웃사는 이 모든 것을 어겼다. 새 수레에 실었고, 손으로 직접 만졌다.

칼빈은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한 의도로 그분의 규정을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주셨다. 경건한 열심이 무지한 방식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여전히 죄다."


🔴 비판적 시각: 선한 의도를 가진 자를 죽인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날카로운 신정론(神正論, theodicy) 질문 중 하나다.

웃사는 악한 의도로 손을 뻗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인간적 관점에서 그것은 칭찬받을 행동이다.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웃사 사건을 성경의 도덕적 일관성에 의문을 품는 논거로 사용했다. 계몽주의 이후 많은 비판학자들이 같은 방향으로 이 사건을 읽는다: 이것은 부족신(部族神)의 변덕스럽고 위험한 권력을 나타내는 고대 내러티브이지, 도덕적으로 일관된 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역대상 13장의 병행 기록을 보면, 다윗은 웃사의 죽음 이후 "하나님이 웃사를 치셨으므로 다윗이 두려워하여"라고 기록한다. 다윗조차 이 사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 균형 있는 시각: 두 개의 질문을 분리해야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오해는 종종 두 개의 질문을 혼동하는 데서 온다:

  1. 웃사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규정의 문제)
  2. 하나님의 반응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신정론의 문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다윗과 웃사, 그리고 모든 행렬 참여자들은 언약궤 운반의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새 수레에 싣는 것 자체가 이미 율법 위반이었다. 이것은 다윗 자신이 나중에 인정한다 (역대상 15:13: "우리가 처음에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규례대로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치셨느니라").

두 번째 질문은 더 복잡하다. 그러나 성경 신학의 맥락에서 이 사건을 읽으면, 웃사의 죽음은 단지 개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대한 경고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존재다. 그것을 "그냥 귀한 물건" 정도로 다루는 순간, 언약 전체의 의미가 무너진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원리가 나온다: 선한 의도는 잘못된 방식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3. 두 번째 논쟁: 다윗은 왜 "새 수레"를 사용했는가 — 블레셋을 모방했는가



📌 논쟁 포인트 ②: 새 수레의 기원 — 블레셋식 운반을 모방한 다윗

이것은 많은 독자들이 놓치는 세부 사항이다.

언약궤가 수레에 실려 운반된 선례가 있었다. 그것은 사무엘상 6장에 나온다. 블레셋이 언약궤를 돌려보낼 때, 그들은 새 수레를 만들고 젖 나는 암소 두 마리에 언약궤를 실어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율법을 몰랐다. 그들에게 새 수레에 싣는 것은 최선의 경의 표시였다.

그런데 다윗도 "새 수레"를 사용했다. 학자들은 여기에 주목한다. 다윗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모방했다는 것이다.


🔵 전통적 견해: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와 세속화를 보여준다

보수 신학자들은 이 세부 사항이 의도적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 대신 이방인의 방식을 따른 것 — 이것이 이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다.

신학자 **데일 랄프 데이비스(Dale Ralph Davis)**는 이렇게 쓴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했던 것을 정확히 반복했다. 하지만 블레셋의 무지는 용납될 수 있어도, 율법을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무지는 다른 문제다."


🔴 비판적 시각: 하나님이 블레셋의 수레를 허용하고 이스라엘의 수레는 처벌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흥미로운 불일치를 드러낸다. 사무엘상 6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은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운반했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소들이 스스로 벳세메스로 향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 웃사는 수레를 사용한 행렬에서 언약궤를 잠깐 붙들었다가 죽었다.

비판학자들은 이 불일치를 텍스트의 편집 과정에서 발생한 신학적 비일관성으로 해석한다. 또는 이 두 이야기가 원래 별개의 전승에서 온 것을 후대 편집자가 통합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 균형 있는 시각: 알고 있는 자에게 더 많이 요구된다

신학적으로 이 불일치는 해소 가능하다. 핵심 원리는 이것이다: 계시를 받은 자에게는 그 계시에 따른 책임이 부과된다.

블레셋은 율법을 몰랐다. 하나님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행했을 때 그것을 받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구체적인 율법이 주어졌다. 그 율법을 알면서도 편의에 따라 무시한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과도 연결된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누가복음 12:48)


4. 세 번째 논쟁: 웃사는 고핫 자손이었는가


📌 논쟁 포인트 ③: 웃사의 신분과 자격 문제



웃사는 아비나답의 아들이었다. 언약궤는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보관되어 있었고, 아비나답의 아들들이 그것을 지켰다.

그런데 아비나답은 기럇여아림 사람이었다 (사무엘상 7:1). 기럇여아림은 원래 기브온 족속의 성읍으로, 이스라엘에 속한 이방 도시였다.

🔵 전통적 견해: 웃사는 레위인이었을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아비나답 가족이 기럇여아림에 거주했던 레위인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레위인은 특정 지파 땅이 없이 각 성읍에 분산되어 살았기 때문에 (민수기 35장), 기럇여아림에 레위인 가족이 살았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 해석을 따르면, 웃사는 자격은 있지만 방식이 잘못된 경우다.


🔴 비판적 시각: 웃사는 레위인이 아닌 이방인 계통이었을 수 있다

기럇여아림의 기원을 따라가면, 그 주민들은 기브온 족속이었다 (여호수아 9장). 만약 아비나답이 기브온 계통의 이방인이었다면, 웃사는 애초에 언약궤를 관리할 자격이 없었다.

비판학자들은 이 모호성이 텍스트의 편집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가 기록될 당시, 웃사의 신분 문제는 이미 논란이 있었거나, 또는 편집자들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했을 수 있다.


🟢 균형 있는 시각: 신분보다 방식이 더 명확한 문제다

웃사의 레위인 여부는 텍스트에서 확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사건의 핵심이 아닐 수 있다.

다윗은 나중에 역대상 15:13에서 실패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규례대로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이것은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라는 다윗 자신의 진단이다. 언약궤를 어깨에 메야 하는데 수레에 실은 것 — 이것이 핵심 위반이었다.


5. 네 번째 논쟁: 왜 하필 웃사만 죽었는가 — 다윗은 왜 살았는가



📌 논쟁 포인트 ④: 집단 책임과 개인 죽음의 불일치

이것은 독자가 가장 강하게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이다. 수레에 언약궤를 실은 것은 다윗의 결정이었다. 웃사는 단지 아버지 집에서부터 언약궤를 지켜온 사람으로서 수레를 몰고 있었다.

책임의 주체는 다윗인데, 왜 웃사가 죽었는가?


🔵 전통적 견해: 웃사는 자신의 고유한 죄로 죽었다

전통 신학은 이 질문에 두 가지 방향으로 답한다.

첫째, 웃사는 언약궤를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는 사람이었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20년 동안 언약궤를 관리했다면, 그는 언약궤 취급의 규정을 가장 잘 알아야 할 사람이었다. 오랜 친숙함이 오히려 경외감을 잃게 했을 수 있다.

둘째, 손을 뻗어 만지는 행위는 그 순간 웃사 자신의 선택이었다. 같은 행렬에 있던 아효는 만지지 않았고 살았다. 다윗도 만지지 않았다. 웃사만이 그 결정적 순간에 손을 뻗었다.

존 칼빈은 이렇게 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한 번에 심판하시지 않는다. 때로 하나님은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을 경고하신다."


🔴 비판적 시각: 이것은 집단 행위에 대한 개인 희생양이다

비판적 독자들은 이 해석에 만족하지 않는다. 웃사의 죽음이 다윗의 잘못된 결정에 대한 경고였다면, 더 정의로운 처벌은 다윗에게 내려지는 것이었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사건은 고대 부족 사회의 연대 책임(Corporate Punishment) 개념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고대 세계에서 지도자의 죄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공동체 구성원 중 누구라도 그 결과를 담당할 수 있었다.

이것은 현대의 개인주의적 도덕관과 충돌한다. 그러나 성경 시대의 공동체적 세계관에서 이것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 균형 있는 시각: 웃사의 죽음이 다윗에게도 충격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에서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 있다: 다윗도 이 사건으로 깊은 타격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사무엘하 6:8-9)

다윗은 분노했고, 두려워했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들이지 못했다. 하나님의 경고가 다윗에게도 실질적으로 적용된 것이다 — 직접적 죽음이 아니라, 언약궤를 갖지 못하는 상실로.

처벌은 한 사람에게 내려졌지만, 그 충격과 교훈은 공동체 전체에 퍼졌다.


6. 다섯 번째 논쟁: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성품과 어떻게 조화되는가



📌 논쟁 포인트 ⑤: 신정론 — 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이것이 웃사 사건이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전통적 견해: 하나님의 거룩함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전통 신학은 이 사건을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Holiness)**에 관한 계시로 읽는다. 하나님은 단지 도덕적 규범의 입법자가 아니라, 그분 자신이 거룩함의 본질이다. 그 거룩함 앞에서 죄와 불순종은 반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차갑고 폭력적인 신이 아니라, 우주의 도덕적 질서 자체가 살아있다는 신학적 선언이다. 법칙을 어기면 결과가 따른다. 중력이 예외를 허용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거룩함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그의 저서 《성스러움의 의미》에서 묘사한 "누미노제(Numinose)" — 두려움과 동시에 매혹되는 신성한 힘 — 가 여기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동시에 소멸시킬 만큼 거룩하다.


🔴 비판적 시각: 이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

이것은 많은 성경 독자들이 느끼는 솔직한 반응이다. 신약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서 4:8)고 선언하는 하나님이, 선한 의도로 손을 뻗은 사람을 즉사시킨다?

비판론자들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실질적으로 다른 신적 개념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키온(Marcion, 2세기 기독교 이단자)은 이 긴장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아예 다른 존재로 분리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르키온의 결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질문 자체는 공유한다.


🟢 균형 있는 시각: 거룩함과 사랑은 대립하지 않는다

성경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거룩함을 전제로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다. 아이가 그 경계를 어겼을 때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부모의 잔인함이 아니라 현실의 작동 방식이다.

웃사 사건 이후 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자기 계시다. 오벧에돔의 집이 석 달 동안 복을 받았다 (6:11). 같은 언약궤가, 올바른 방식으로 대하는 집에는 복이 되었다. 언약궤 자체가 파괴적이거나 악한 것이 아니었다. 접근 방식이 문제였다.

다윗은 이 사건 이후 두 번째 시도에서 율법대로 레위인이 어깨에 메어 언약궤를 운반했고 (역대상 15:15), 이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다윗은 춤을 추었다.


7. 역대상의 병행 기록 — 같은 사건, 다른 강조점



📌 논쟁 포인트 ⑥: 사무엘하와 역대상의 기록 차이

같은 사건이 두 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강조점이 다르다.

사무엘하 6장: 웃사의 죽음 → 다윗의 분노와 두려움 → 오벧에돔의 집에 언약궤를 맡김 → 석 달 후 다시 이동 → 다윗의 춤 → 미갈의 경멸 순서로 진행된다.

역대상 13장과 15장: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역대상 15:13에서 다윗이 실패 원인을 명시적으로 분석하는 구절이 추가된다: "처음에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치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메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역대상은 또한 두 번째 시도에서 레위인들이 율법대로 언약궤를 어깨에 멘 사실을 더 상세히 기술한다.


🔵 전통적 견해: 두 기록은 상호 보완적이다

보수 학자들은 사무엘하와 역대상의 차이를 두 저자의 관점과 목적 차이로 이해한다. 사무엘서는 다윗 왕조의 역사를 서술하며 사건의 감정적 충격에 집중한다. 역대상은 포로기 이후 공동체에게 올바른 예배의 방식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으며, 따라서 율법 준수와 그 결과에 더 집중한다.

두 기록이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건의 다른 측면을 강조한다.


🔴 비판적 시각: 역대상은 다윗을 보호하기 위해 편집되었다

비판학자들은 역대상이 전반적으로 다윗을 더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무엘하는 다윗의 분노(6:8: "다윗이 분하여")를 기록하지만, 역대상의 병행 구절(13:11)에서는 같은 분노를 기록하면서도 전체 맥락을 다르게 구성한다.

더 중요한 것은, 역대상이 다윗의 밧세바 사건이나 암논 사건 등 다윗의 도덕적 실패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패턴은 역대상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비판학자들은 역대상이 포로기 이후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신학적 재서술이라고 본다.


🟢 균형 있는 시각: 두 기록의 차이 자체가 텍스트의 솔직함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만약 역대상이 다윗을 완전히 미화하려 했다면, 웃사 사건 자체를 삭제하거나 크게 축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대상은 이 사건을 그대로 기록하면서, 다윗 자신의 입으로 실패를 인정하는 말을 추가한다.

이것은 성경 텍스트의 복잡성과 솔직함의 증거다. 성경은 영웅을 만들기 위한 선전물이 아니다. 다윗의 실수, 그 실수로 인한 사람의 죽음, 그리고 그 실수에서 배우는 과정 — 이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8. 오벧에돔의 복 — 같은 언약궤가 왜 다른 결과를 냈는가



📌 논쟁 포인트 ⑦: 오벧에돔은 이스라엘 사람이었는가

사무엘하 6:10은 오벧에돔을 **"가드 사람"**이라고 부른다. 가드(Gath)는 블레셋의 주요 도시다. 그렇다면 오벧에돔은 이방인이었는가?

🔵 전통적 견해: 오벧에돔은 레위인이었다

역대상 26:4-8은 오벧에돔을 문지기 레위인으로 소개한다. "가드 사람"이라는 칭호는 그가 가드 출신이거나 가드에 연고가 있는 레위인이었음을 나타낸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오벧에돔이 언약궤로 인해 복을 받은 것은 이방인이 받은 특별한 복이 아니라, 레위인이 올바른 태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섬겼을 때 받은 복이다.


🔴 비판적 시각: 오벧에돔이 이방인이었다면, 이것은 중요한 신학적 전복이다

만약 오벧에돔이 실제로 블레셋 출신의 이방인이었다면, 이 이야기의 신학적 무게는 전혀 달라진다. 이스라엘 사람 웃사는 언약궤를 잘못 다루어 죽었는데, 이방인 오벧에돔은 그 언약궤로 복을 받았다.

이것은 혈통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강력한 신학적 메시지가 된다. 그리고 이 주제는 구약 전체에 걸쳐 반복된다 — 라합, 룻, 나아만 — 이방인이 오히려 이스라엘보다 더 온전한 믿음을 보이는 패턴.


🟢 균형 있는 시각: 두 해석 모두 같은 신학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오벧에돔의 정확한 신분과 무관하게, 본문이 말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언약궤는 그 자체로 파괴적이지 않다. 언약궤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결과를 결정한다.

웃사의 죽음이 언약궤의 위험성을 보여줬다면, 오벧에돔의 복은 언약궤, 즉 하나님의 임재는 본질적으로 축복임을 보여준다. 경외함과 올바른 태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대할 때, 그것은 생명과 복의 원천이 된다.


9. 웃사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웃사는 3,000년 전에 죽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오늘도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편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의도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선한 의도를 보시고 방식의 오류를 눈감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

웃사 사건은 그 기대에 충격을 준다.

그러나 그 충격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아야 한다. 다윗은 이 사건 이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배웠고, 규례대로 다시 시도했다. 그리고 언약궤는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다윗은 춤을 추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인간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올바른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경계였다. 그 경계를 배우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 경계 너머에는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던 날 다윗이 경험했던 것이 있다 — 한계 없는 기쁨.

다음 편에서는 블레셋이 언약궤를 이스라엘에 돌려보낸 이유를 다룬다. 쥐와 종기의 재앙 — 이것은 실제 역병이었는가, 그리고 블레셋의 다섯 금 쥐와 다섯 금 종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고 자료: 사무엘하 6장, 역대상 13·15장, 민수기 4장, 레위기 16장, 여호수아 9장, 사무엘상 6-7장 | Dale Ralph Davis (2 Samuel: Out of Every Adversity), Rudolf Otto (The Idea of the Holy), Walter Brueggemann (First and Second Samuel: Interpretation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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